페코히로의 연구하고 성장하는 일상

다 허망하구나.

에코히로 2019. 3. 6. 22:34


허망함의 이치를 깨우쳐 주시기 위해...

 "아버지께서 인생의 허망함의 이치를 깨우쳐 주시기 위해 먼저 가셨으니..."

2년전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 존경하는 스승님께서 위로하는 문자를 보내시며 이런 표현을 쓰셨다.

'허망'이라는 뜻이 말로는 설명할 수 없고, 머리로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없지만 가슴으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오늘 내가 평소 크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계시던 이웃의 둘째 따님이 운명을 달리했다. 평소 아팠던 것도 아니었다. 갑자기 장염 증세를 보여서 응급실로 가던 중 차안에서 사망했다. 내용을 전해 듣기만 해도 멍했다. 20세 중반의 꽃다운 나이의 그녀는 그렇게 세상을 떴다. 한번도 본적도 없지만 내 온몸과 마음을 휩싸는 슬픔과 당혹스러울 정도의 감정의 요동은 다시금 그 단어를 떠오르게 했다. 다 허망하구나.


凡所有相 皆是虛妄 (범소유상 개시허망)

  '범소유상 개시허망' 금강경에서 나오는 부처님 말씀으로써 '무릇형상이 있는 것은 다 허망하다, (예외가 없다!!)' 라는  뜻이다. 여기서 '허망하다'라는 것은 영원한 것도 아니고 어떤 고유한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 허깨비아지랑이 같은 것이다라는 의미가 있다. , 제행무상이고 제법무아와 같다. 금강경 뒷부분에는 '범소유상 개시허망' 풀어서 설명을 한다.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이라고 했다. 이는 '모든 함이 있는 법은 꿈같고환상 (헛것신기루같고물거품 같고그림자 같다, 아침 이슬 같고 번갯불 같다' 라는 의미로 허망함을 비유로 설명한 것이다


허무하다 vs 허망하다

  즉, '범소유상 개시허망'이란 '모든 상은 허망하다' 뜻인데 여기서 '' '크고, 작고, 옳고, 그르고'하는 구분 짓는 모두를 뜻한다. '허망하다' '허무하다' 다른 것이다. '허무하다' '인생이 허무하다' 처럼 주관적 인식이지만, '허망하다' 겨울이 가고 봄이 와서 개구리가 잠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객관적 현상인 것이다. , 낙담과 같은 인간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태를 설명한 것이다. 허망하니 집착을 것이 없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허망과 허무를 비슷하게 느끼고 허망한 것을 허무하게 느낄까? 잡을 것이 없기에 허무하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잡을 것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이 잡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허망한 줄을 모르고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제행이 무상이요, 제법이 무아다.

 제법개공이고, 제상개공이다. 제법이 공한줄을 알아야 한다.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금강경의 '범소유상 개시허망'의 뒷구절은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이다.

 모든 상을 상아닌 것으로 본다면, 모든 상이 공한 것을 알면 곧 여래를 볼 것이다라고 했다. , 법의 실체를 보고, 실상을 보는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실상을 사실인양 착각하고 있다꿈이더라가짜 상을 진짜 상인양 착각하고 살고 있다. 우리의 오해는, 헛거였구나하고 알면 거기서 끝이다. 헛거가 없어지고 나면 실상이 있을꺼라고 생각하게 된다진짜배기가 따로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해탈의 길에서 멀어지게 된다. 아니다. 집착할 진짜배기도 따로 없다. 집착할 바가 없어져 버리면 모든 괴로움은 사라져 버린다.

 

 상에 집착한다는 것은 '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것만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에서 오류가 생기는 것이다. 어떤 사물을 경험의 관점으로 한쪽 면만 보고 '이러 이러하다'라고 하는 것은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것과 같다. 그러니 우리는 이런 , 저런 , , 아래, 여기, 저기를 보아서 사물의 전모를 , 눈을 뜨고 코끼리 전체를 비로소 진실을 있게 된다. 실상을 보는 것이다.

 

 

죽음은 현상이다.

 죽음은 현상이라고 했다. 영원한 것은 없다. 죽음은 현상이고 우리는 그것을 받아 들여야 한다. 하지만, 슬픔은 어떻게? 이건 세월이 약일 밖에 없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 하지만 세월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가? 3년? 10년? 세월이 무조건 약이 되지는 못한다. 아직도 아버지를 생각하며 자주 그리워 하고 슬퍼하는 내모습을 보면 그러한 같다. 오히려 세월이 흐를수록 그리움이 깊어지고, 죄송스러움이 깊어지는 같기도 하다.

 

 그러므로 '범소유상 개시허망'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제행은 무상이다.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원하지 않는 일도 세상에서는 일어난다. 그리고 세상은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죽음도, 이웃분 딸의 갑작스러운 죽음도 객관적으로는 하나의 죽음이다. 이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아니다. 현실을 부정하고, 기억에 집착해서 그리워하고, 후회하고, 죄스러워하고 집착한다면 나쁜 일이 된다. 하지만 이를 '아버지께서 인생의 허망함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생각할 있을 정도로 공부가 깊어진다면 아버지는 나에게 인생의 이치를 가르쳐 주시기 위해, 바른 이치를 깨달을 있도록 인도하신 것이 되는 것이 되어 나와 고인 모두가 좋게 되는 것이다. 중생을 깨우치려고 몸을 버리신 수많은 보살들처럼 아버지도, 이웃분의 딸도 남아 있는 우리를 깨치기 위해 보살행을 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진정으로 그들을 천도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에 근거해서 돌아가신 분이 나에게 마지막으로 선물, 죽음으로써 바른 이치를 깨치게 해준 선물을 주고 갔다고 긍정적으로 받아 들여야 하는 것이다. 또한 그 선물의 소중함을 알고, 진심으로 '허망함'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할 것이고,,,

 

 물론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렇게 살아 봐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지금 순간, 나와 소중한 사람들이 다만 살아 있음에 감사하며 '상'에 집착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적극적으로 괴로움 없이 행복하게 살아가 봐야 겠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